할리우드 역사상 가장 유명한 주얼리 컬렉터를 뽑자면 단연 엘리자베스 테일러 되시겠다.
그녀의 최고 대표 주얼리는 가장 사랑했던 남편 리차드 버튼이 선물한 까르띠에-버튼 다이아몬드
남아프리카 광산에서 채굴돼 해리 윈스턴이 가공한 69캐럿에 달하는 Pear-Cut 다이아몬드이다.
참고로 리차드 버튼은 웨일즈 출신으로 영국을 대표하는 명배우로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결혼, 이혼... 결혼, 이혼한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이 다이아몬드가 유명한 것은 최초로 다이아몬드가 백만 달러의 가치의 역사를 쓰기도 했다.
그 당시 첫 경매가 열릴 때 엘리자베스 테일러에게 다이아몬드 선물을 하려던
리차드 버튼은 5만 달러의 차이로 아깝게 까르띠에에게 경매에서 졌는데
아름다운 아내에게 다이아몬드를 선물하고 싶어 반미쳐있던 리차드 버튼은 까르띠에에게
하루 동안 말 그대로 dog지랄을 떨어서 신물난 까르띠에는 110만 달러이란 거액으로 리차드 버튼에게 다시 팔았다.
이후 까르띠에 다이아몬드로 불렸던 69캐럿짜리 다이아몬드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시그니처 다이아몬드로 등극하며 일명 테일러-버튼 다이아몬드로 불린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리차드 버튼과의 두 번째 이혼 후 테일러-버튼 다이아몬드를 경매에 내놨다.
알프레드 히치콕은 주얼리 덕후였다. 특히 까르띠에
그의 까르띠에 사랑은 그의 영화 속 뮤즈에게도 전해졌고
가까운 미래에 모나코 왕자와 결혼하게 될 그레이스 켈리의 약혼반지 또한 까르띠에였다.
마가렛 대처는 대중 앞에 모습을 보일 때면 항상 눈에 크게 띄는 주얼리들을 착용한 것으로 유명하다.
클립 온 진주 귀걸이는 마가렛 대처의 상징 중 하나도 의외로 상당히 많은 주얼리들을 착용했다.
그의 사후 이후 마가렛 대처의 150개 정도의 주얼리들은
2019년 열린 크리스티 경매에 부쳐져 100만 파운드가 넘는 총액을 달성했다.
또한 마가렛 대처의 시그니처 주얼리 중 하나인 조약돌 팔찌도 경매에 부쳐져 4만 파운드(한화 6천만 원 이상)에 팔렸는데 이 팔찌는 마가렛 대처 이후 두 번째로 여성으로서 영국 총리가 된 테레사 메이가 구매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추측에 대해 테레사 메이는 공식적인 인정은 하지 않았지만,
테레사 메이는 자신의 총기 임기 마지막 날 마가렛 대처를 연상시키는 파란색 슈트와 함께
오른쪽 팔목에는 조약돌 팔찌를 착용했다.
프랑스 명품 주얼리 브랜드 반 클리프 앤 아펠의 하이 주얼리 시그니처 디자인 중 하나인 지프(zip) 네크리스는 미국 출신 이혼녀로 에드워드 8세의 아내가 된 윌리스 심슨의 아이디어로부터 시작되었다.
윌리스 심슨은 본인이 바라던 영국 왕실의 왕비는 못되었으나 악명으로 1930년대 패셔니스타로 유명했고,
특히나 반 클리프 앤 아펠의 충성스러운 고객이자 홍보수단이었다.
하지만 막상 윌리스 심슨은 지프 네크리스를 소유하진 않았고, 착용한 사진조차 있지 않다.
존 F. 케네디의 아내로 영부인 재클린 케네디는 많은 스타일을 만들어냈지만
그중에서도 그녀의 시그니처인 세 줄 진주 목걸이가 가장 유명하다.
재클린 케네디는 JFK 암살사건 이후 그리스 선박 재벌 아리스토틀 오나시스와 결혼,
신통치 않은 결혼생활은 이혼으로 끝날 뻔하나 오나시스의 병사로
다시 뉴욕으로 돌아와 사교계 스타일 아이콘으로 평생 군림했다.
하지만 1994년, 암 선고 후 재산을 지킨다는 명목 하에 본인 스스로 사후 경매를 미리 예약했고
그녀의 경매품들은 모두 3400만 달러 이상에 팔렸다.
그중 그녀의 시그니처 세줄 진주 목걸이는 그 당시 20만 달러가 넘는 가치로 경매에 팔렸는데
사실 진주 자체는 모조품으로 보석으로써의 가치는 전혀 없는 물건이다.
이런 가격에 대해 소더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은 재키 케네디가 걸쳤던 어떤 물건이든 사고 싶어 했다."
다이아몬드보다 빛나는 스웨덴 빅토리아 왕세녀의 티아라의 비밀 (1) | 2022.03.31 |
---|---|
빅토리아 여왕에게 보내는 남편의 blue heart (2) | 2020.12.30 |
오드리 헵번에서 갈 가돗까지, 티파니 옐로우 다이아몬드의 여정 (0) | 2020.12.26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