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에 와서도 '루비'과 '스피넬'를 구분하기란 아주 힘들죠-. 18세기 과학이 발전하기 전까지 모든 붉은 보석은 모두 루비라 칭송했으니까요. '보석의 왕'이라 여겨졌던 루비는 불행이나 위험을 예견할 수 있다 믿어졌고-, 다른 고대 사람들은 질병이나 화를 가라 앉힐 것이라고 여겼죠.
가장 붉고, 최상의 루비를 만들어내는 버마의 전사들은 전투에서 루비가 그들을 천하무적의 전사들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과거 유럽인들은 루비가 지혜, 부, 건강을 가져온다 믿었으나 그들은 자신이 갖고 있는 것이 루비가 아닌 사실을 붉은색을 띠는 스피넬이라는 것을 몰랐죠.
스피넬은 아주 흥미로운 보석입니다. 루비보다 선명도가 진하던가 상업적인 큰 가치를 지닌 보석은 아니나 그 대신 루비와 같이 단단하며, 크기가 크고 경도가 낮아 글씨나 그림을 새기기에 적합하죠. 더욱이나 현재에 와서 스피넬로 밝혀지진 했으나 루비라는 이름을 가지며 가장 높은 분(?) 위의 왕관에 올라가 있는 보석이기도 합니다. 현재 영국 국왕을 대표하는 제국관 Imperial State Crown의 가장 중앙에 장식된 170캐럿 흑태자의 루비 Black Prince's Ruby 은 사실 찐루비가 아닌 스피넬이니까요.
엘리자베스 2세의 제국관의 블랙 프린스 루비는 그 유명한 알함브라 궁전의 술탄의 보석 중 하나였습니다. 흑태자 루비가 최초로 발견된 곳은 오늘날 아프가니스탄과 타지키스탄이 국경을 접하고 있는 바다흐샨 주의 쿠히랄 Kuh-i-Lal 광산으로 예상되죠. 쿠히랄 광산은 발라스 루비 Balase Rubie로 유명합니다. 과거 유럽인들은 발라스 루비를 루비의 한 종류라고만 생각했기 때문에, 사실상 발라스 루비라고 붙어진 보석들은 모두 붉은색 스피넬이라고 보면 돼요.
실크로드를 여행하는 무역상들은 동쪽에서 중국으로, 서쪽에서 중동으로.. 바다흐샨을 거쳐 아프리카와 유럽으로 가 스피넬을 사고 팔았죠. 당시 스페인은 지역에 따라 여러 왕들에 의해 통치됐는데, 그중 무함마드 6세는 그라나다를 군림하고 있었습니다.
무수한 권력자들이 그렇듯, 1360년대 초반 그라나다의 술탄 무함마드 6세는 그의 정적들에게 위협을 받으며, 그의 권력은 점점 줄어들어갔습니다. 그렇게 얼마 되지 않아 처남에 의해 권력에서 추출된 무함마드는 알함브라 궁전에서 도망쳐 나오면서 가져갈 수 있는 최대한 많은 재산, 보물들을 손에 쥔 채 달아났죠. 이때 당연히 그의 170캐럿짜리 발라스 루비 또한 가져갑니다.
알함브라 궁전에서 도망쳐 나온 무함마드 6세는 카스티야 연합왕국의 페드로 1세가 있는 세비아로 가서 자신과 힘을 합쳐 그라나다를 다시 탈환하자고 설득합니다. 페드로 1세는 무함마드 6세와 그라나다의 새로운 술탄을 살해해 그들의 계획은 성공하는 듯싶었죠.
그러나 이미 권력은 새로운 자에게 옮겨졌고, 그라나다의 새로운 술탄을 살해한 페드로 1세는 그라나다의 전 술탄도 살해합니다. 페드로 1세는 죽은 무함마드 6세의 재산을 모두 털어 가져 갔고, 그의 주머니 속에 있는 발라스 루비를 자신의 주머니 속으로 쓱 집어 넣어갔죠.
하지만 발라스 루비의 새로운 주인 또한 권력을 오래 유지하지는 못하는데, 자신이 죽인 무함마드 6세와 마찬가지로 페드로 1세는 자신의 사촌들에게 권력 위협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이복형제들에게 권력을 빼앗긴다면 목숨을 잃는 건 당연한 수순인 만큼 페드로 1세는 새로운 동맹을 찾기 위해 외국의 도움을 청하기 시작합니다.
페드로 1세는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3세에게 손을 뻗었고, 그는 이긴다면 에드워드 3세에게 카스타야 왕국의 땅과 많은 재산, 보물이라는 후한 보답을 약속했죠. 따라 그의 장자 우드스톡의 에드워드가 카스타야 왕국의 왕위 계승 다툼을 진압하기 위해 1367년 카스티야 왕국으로 옵니다.
페드로 1세의 이복형제 엔리케 2세를 돕기 위해 프랑스 샤를 5세가 도왔으나 흑태자에 비하면 전력이 딸렸고, 니헤라 내전 Battle of Nájera는 잉글랜드와 페드로 1세의 승으로 돌아갔습니다.
외국에서의 전쟁을 위해 많은 시간과 돈을 쓴 흑태자 에드워드는 당연히 페드로 1세가 약속한 보상, 그 이상의 보상을 요구했습니다. 이복형제와의 내전에 이기긴 했다만 재정이 바닥난 페드로 1세는 에드워드 왕세자의 요구에 답할 수 없었죠.
당연히 페드로 1세와 흑태자 에드워드의 동맹은 깨지며 (2년 뒤, 엔리케 2세는 페드로 1세를 죽이고 왕위에 오름.) 흑태자는 페드로 1세에게 단 한 가지 보물만을 얻은 채 잉글랜드로 돌아갑니다. 무함마드 6세의 발라스 루비였죠. 가지고 온 것은 오직 붉은 보석뿐이 었으나 외국에서의 전쟁을 이기고 돌아온 실망스러운 왕자가 가져온 보석에 사람들은 흑태자의 루비라고 부르게 됐습니다.
1년만 더 살았더면 에드워드 3세의 뒤를 이어서 잉글랜드의 국왕이 될 숙명이었으나 흑사병이라는 역병으로 흑태자 에드워드는 1376년 사망하고 흑태자의 10살 된 아들 리처드 2세가 잉글랜드의 왕위에 오릅니다. 하지만 어린 나이에 최고 권력 자리에 오른 리처드 2세를 주위에서 가만 둘리 없었죠. 그는 1399년 폐위당합니다.
보석이 잉글랜드로 간 뒤의 왕실의 국고에 가만히 있었기에 기록은 더 있지 않으나, 드디어 1415년 다시 세상에 등장합니다. 리처드 2세의 왕위를 찬탈한 헨리 4세가 죽고, 잉글랜드 왕위에 오른 헨리 5세는 프랑스와의 전쟁을 하고 있었죠. 백년전쟁 전투 중 하나인 아쟁쿠르 전투 Battle of Agincourt에 나간 헨리 5세는 적들에게 잔인하기로 유명했던 흑태자의 루비가 붙여진 전투모를 쓰고 전투에 임했다 기록됩니다.
사실 화려한 보석들로 감싸진 헬멧을 쓴 결정 자체는 왜 굳이 그 무거운걸? 라며 어리석은 결정이라 느껴지지나 헨리 5세에게는 행운이었습니다. 아쟁쿠르 전투 중 프랑스 사령관 달랑송 공작이 헨리 5세의 머리를 도끼로 가격한 순간 흑태자 에드워드의 루비를 맞고 튕겨나가 헨리 5세는 겨우 살아남게 되었죠.
살아남은 헨리 5세와 마찬가지로 헬멧에 달린 루비 또한 무사히 살아남아 프랑스 측은 막대한 손실을 입으며 헨리 5세는 프랑스의 공주와 결혼하며 그의 아들 헨리 6세가 프랑스의 왕위 계승권을 가지게 됩니다.
그 후 1521년 헨리 7세 아니면 헨리 8세를 위해 제작된 튜더 가문의 왕관에 장식된 흑태자 에드워드의 루비는 '위대한 발라스 루비' 라 언급됩니다. 헨리 8세의 왕관은 3.4kg의 금, 58개의 루비, 28개의 다이아몬드, 사파이어 19개, 에메랄드 2개, 168개의 진주로 장식된 것이 세세하게 기록돼있습니다.
헨리 8세가 그렇게 원했던 아들은 왕위에 오르긴 하나 재위한 지 6년 만에 16세에 사망하고, 헨리 8세를 위해 만들어졌던 튜더 왕관은 블러디 메리를 거쳐 엘리자베스 1세의 개인 소장품으로 보관됩니다.
엘리자베스 1세는 어느 날 밤 스코틀랜드 외교관 제임스 멜빌 경을 침실로 데려가 흑태자 에드워드의 루비를 보여줬다고 전해지는데요, "여왕은 나에게 라켓볼처럼 아름답고 훌륭한 루비를 보여주었다. 나는 루비를 나의 여왕(스코틀랜드 메리 여왕)이나 레스터 백작을 위해 선물하기를 열망했다. 그런 나에게 여왕은 '만약 메리 여왕이 나의 조언을 따르기만 한다면 적절한 때에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 대신 다이아몬드를 증표로 보내지' 라고 대답하였다." 라는 제임스 멜빌 경의 기록이 있습니다.
엘리자베스 1세 죽음은 튜더 왕조의 종말을 뜻했고, 엘리자베스 1세 사후 스튜어트 가문의 제임스 1세, 찰스 1세가 튜더 왕관을 물려받았을 것이라 예상됩니다. 그러나 잉글랜드 내전으로 인해 찰스 1세는 1649년 참수를 당하며 참수를 명한 올리버 크롬웰에 의해 튜더 왕관의 보석을 모두 해체되고, 금은 다 녹여 팔리게 됩니다. 이때 흑태자 에드워드의 루비는 고작 15파운드에 팔리게 되죠.
왕은 참수당하고, 왕관은 모두 녹아내려버렸으니 이후 보석의 행방은 묘연합니다. 그러나 1660년 찰스 1세의 아들 찰스 2세가 왕좌를 되찾을 때 찰스 2세는 흑태자 에드워드 루비 또한 되찾아와 자신의 왕관에 장식합니다.
그 후 2백여 년이 지나 1838년 빅토리아 여왕을 위한 진홍색 벨벳으로 된 임페리얼 스테이트 크라운이 만들어지며 1,600개가 넘는 다이아몬드, 277개의 진주, 17개 사파이어, 11개의 에메랄드, 4개의 루비.. 와 불규칙한 모양의 카보숑 컷 발라스 루비는 빅토리아 여왕의 Imperial State Crown 정중앙을 차지합니다.
빅토리아 여왕을 위한 제국관은 여러 차례 개조되고 변경되었지만 현재 엘리자베스 2세를 위한 임페리얼 스테이트 크라운 또한 흑태자 에드워드 루비가 앞에서 빛나고 있죠.
흑태자 에드워드의 루비는 20세기에 들어서며 루비가 아닌 스피넬이라는 것이 밝혀졌기 때문에 '과연 이 보석의 가치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만약 페드로 1세가 흑태자 에드워드에게 발라스 루비를 주지 않았다면 이 붉은색의 루비는 스페인 왕실에 가게 됐을까요? 아님 흑태자 에드워드 루비 덕분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헨리 5세는 아쟁쿠르 전투에서 죽었을까요?
역사에는 만약이라는 것은 없고, 영국 왕실의 재정의 바닥이 나더라도 팔지 않을 Imperial State Crown은 세상 어떠한 돈으로도 살 수 없기 때문에 진짜 루비가 아닌 스피넬이라고 실망하더라도 그 붉은 스피넬은 값을 매길 수 없는 보석이 됐습니다.
제인 오스틴이 남긴 유일한 반지 (0) | 2022.08.12 |
---|---|
다이애나 스펜서의 탄생석 루비 주얼리❤️💎 (0) | 2022.07.05 |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주얼리를 통해 표현한 사랑의 메시지 (0) | 2022.06.20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