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70년대 프랑스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는 사치로 인해 빚을 지기 시작했습니다. 대부분 오트 쿠튀르의 원조라 일컬어지는 로즈 베르탱의 어마어마하게 값비싼 드레스 때문이었죠
하지만 보통 사람들과 다르게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왕이라는 직업을 가진 남편을 가지고 있었고, 아내에게 고분고분했던 루이 16세는 별 불평 없이 마리 앙투아네트의 빚을 다 갚아줍니다. 딱히 엄청나게 큰 빚도 아니었고요
루이 16세만 봐도 다른 왕족들과 마찬가지로 끝없는 사치를 이어가고 있었고 그 결과로 프랑스 왕국의 재정상태가 더욱더 악화되어가고 있었죠
하지만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출신의 프랑스 왕국에서 지내는 왕족들과 달리 마리 테레지아의 막내딸로, 프랑스의 적국 오스트리아에서 온 외국인 왕비라는 정체성과 함께 루이 16세의 형편없는 정치적 능력, 왕실의 재정적 악화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에 있어 완벽하게 적합한 희생양이 되어가고 있었다는 점
프랑스 국민이 자신들의 왕비가 베르사유 궁전에서 다이아몬드를 휘감으며 호화스러운 휴가 생활을 보낸다고 생각하는 것과 달리 마리 앙투아네트는 루이 16세와의 사이에서 자식들을 어렵게 낳은 후에는 남편에게 선물 받은 생 클루에서 머물며 다이아몬드보다는 가정을 돌보는 데에만 집중했어요
실제로 마리 앙투아네트의 초상화나 기록을 보면 그는 딱히 목걸이와 같은 주얼리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해요. 그러나..
마리 앙투아네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운명을 단두대 앞으로 이끈 기막힌 일에 휩쓸리게 됩니다
마담, 최근에 저희에게 제안해 주고 저희가 열정적인 존경을 바치며 동의한 최근의 합의가 왕비 폐하의 명령에 대한 저희의 복종과 헌신을 보여주는 새로운 증거라고 감히 생각하며 저희는 최고의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저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가장 위대하고 훌륭하신 왕비 폐하의 수중에 들어갈 거라는 생각에 진정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1785년,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왕실 공식 보석상 샤를 아우구스트 베머에게 위와 같은 내용의 편지를 시녀를 통해 전해받게 됩니다
'다이아몬드 목걸이라니? 난 어떠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구매한 적이 없는데? 설마...'
그럼 먼저! 자신이 디자인하고 제작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비싼 값에 팔려고 베르사유 궁전을 이리저리 휘젓고 다니던 샤를 아우구스트 베머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1772년, 루이 16세의 할아버지이자 프랑스 왕실의 재정 악화를 특급열차 수준으로 가열하게 주도했던 루이 15세는 자신이 애정 하는 정부 마담 뒤바리를 위해 굶어 죽어가는 프랑스 국민들은 상상하지도 못하는 거금을 가지고 왕실 보석상 샤를 아우구스트 베머에게 찾아가 다른 목걸이들을 모두 능가하는 아름다운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만들라 의뢰합니다.
베머가 만든 것은 그야말로 최상급 품질의 다이아몬드가 647개가 박힌 2,800캐럿짜리 정교한 다이아몬드 목걸이였죠
안 예쁘다 생각하세요?
저도요
그 돈을 가지고 만든 게
이 흉물
아무튼 베머가 그의 인생을 걸면서 이 거대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만들고 있는 와중에 루이 15세는 천연두로 사망하게 됩니다. 이제부터 쉽게 이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뒤 바리 목걸이라고 칭할게요
이 말은 뭐다? 베머는 새된 거죠
뒤바리 목걸이를 사줄 당사자는 사라져 버리고, 뒤 바리 마담은 도망가고, 자신은 이미 1500만 달러를 사용했는데 말이죠! (현재 시세 기준)
이에 베머는 자신이 1,500만 달러를 손해 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프랑스 왕실을 들락거리며 아는 귀족이란 귀족에게 이 목걸이를 사달라며 비굴 비굴 거립니다
하지만 지금 봐도 구리지만 그때 봐도 그린 디자인에 그 거금을 주고 떡하니 구매할 사람은 없었죠. 베머는 절박한 마음에 마리 앙투아네트에게도 제발 사달라 요청하지만 답은 역시나 NO
덧붙이자면 마리 앙투아네트는 어머니인 마리 테레지아의 영향으로 남편이 정부를 두는 것을 굉장히 혐오해서 자동적으로 루이 15세의 정부 마담 뒤 바리를 굉장히 싫어했어요
그러니 마담 뒤 바리를 위해 디자인된 목걸이를 그런 거금을 주고 살 마음은 미세먼지만큼도 없었고, 앞서 말했듯이 마리 앙투아네트는 아이들을 낳은 후에는 도박, 주얼리보다는 생 클루에서의 삶을 더 중요시했거든요.
하지만 베머가 이렇게 목걸이를 사달라 귀족들을 달달 볶아도(... 라 쓰고 나댄다고 한다) 평상시에는 평판 좋고 프랑스 왕실 보석상인 그를 궁정에서 쉽게 내쫓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죠.
왕비님 제발 사주세요ㅜㅠㅠ
NO! 프랑스에겐 다이아몬드보다 군함이 더 필요해요
이렇게 베머가 뒤바리 목걸이를 팔려고 안달이 난 것을 베르사유 궁전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와중에 마리 앙투아네트가 아래와 같은 편지를 전달받게 된 거죠
~다시 보기~
... 마담,
최근에 저희에게 제안해 주고 저희가 열정적인 존경을 바치며 동의한 최근의 합의가 왕비 폐하의 명령에 대한 저희의 복종과 헌신을 보여주는 새로운 증거라고 감히 생각하며 저희는 최고의 행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저희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가장 위대하고 훌륭하신 왕비 폐하의 수중에 들어갈 거라는 생각에 진정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들로 가득 찬 편지를 받은 마리 앙투아네트는 베머가 언급한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분명히 자신을 위해 새로 만든 다이아몬드 목걸이라 치부했고,
자신은 다이아몬드에 관심 없다 수백 번 말해도 말귀를 못 알아먹는 베머와의 인연을 끊겠다 여기고는 별 쓸모도 없어 보이는 베머의 편지를 불태어버립니다. 이 결정은 아주 크나큰 실수였죠. 여기서 편지 속 진실은...
① 베머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위해 새로운 다이아몬드를 만들지 않았다
② 베머는 이미 왕비에게 목걸이를 팔았다 생각했다
엥? 이게 뭔 일일까요
왜 베머는 왕비가 사지도 않은 목걸이를 샀다고 생각했을까요?
베머가 마리 앙투아네트가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샀다 착각한 것은 혼자만의 착각이 아녔습니다
그 이유는 베머에게 마리 앙투아네트를 대신해 목걸이를 산다며 추기경 루이 드 로앙이 찾아갔으니까요
귀족 가문 출신으로 추기경을 지내고 있던 로앙은 그의 방탕한 라~이~프~스~타~일로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이미 찍혀있던 상태였습니다. 이에 야망이 컸던 로앙은 뒤바리 목걸이를 대신 구매해서 마리 앙투아네트의 환심을 사려는 목적을 가지게 되었죠
왕실의 좋지 못한 재정으로 마리 앙투아네트가 원하지만 사지 못하고 있다고 착각을 해버린 로앙은 자신이 목걸이 값을 소액 지불하는 호의까지 베풀면서 마리 앙투아네트의 이름으로 이 목걸이를 구매하러 왔다 베머에게 선언합니다
하지만 마리 앙투아네트는 처음부터 끝까지 뒤바리 목걸이를 원하지 않았고 왕비, 로앙, 베머는 서로에게 엄청난 오해를 하게 됩니다. 그럼 여기서 의문
왜 로앙은 베머에게 자신이 마리 앙투아네트를 대신에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사러 왔다 칭했을까요?
이것에도 또 이유가 있습니다. 프랑스의 엄격한 가문의 일원이었던 로앙은 앞서 말했듯이 가톨릭교의 추기경이라는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방탕한 생활로 유명해 가정을 최우선시한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반감을 사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왕비에게 잘 보이려고 드릉드릉한 로앙에게 라모트 발루아 공작부인이라는 사기꾼이 접근하게 됩니다
당시 라모트 발루아 공작부인은 마리 앙투아네트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프랑스 사교계에서 이름을 떨쳐가던 인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친분은 개뿔
많은 사람들이 라모트 발루아 공작부인이라고 믿었던 여성은 앙리 2세의 사생아의 후손으로 잔느(Jeane Saint Remy de Valois)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이었죠
하지만 그 당시 속아 넘어갔던 사교계 사람들과 같이 로앙 추기경도 잔느에게 사기를 당하며 로앙은 잔느에게 마리 앙투아네트의 (위조된) 서명이 담긴 목걸이 구매 위탁 부탁 편지를 건네받습니다
※잔느가 위조한 마리 앙투아네트의 서명은 프랑스의 마리 앙투아네트라고 적혀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여) 왕·왕비들은 서명을 할 때 자신의 국가와 성명을 같이 적지 않음 오직 이름만을 쓴다.
즉, 마리 앙투아네트는 서명을 할 때 프랑스의 마리 앙투아네트가 아닌 자신의 세례명인 Marie Antoinette 으로 서명했다.
이렇게 잔느의 사기행각은 루이 16세가 로앙을 내각에 소환시키면서 전말이 알려지게 됩니다
루이 16세는 귀족 가문 출신인 로앙이 저러한 형편없는 위조 서명을 알아보지 못한 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했고, 평소 우유부단했던 것과 달리 아내이자 왕비인 마리 앙투아네트의 평판을 위해 단호히 로앙의 바스티유 감옥행을 결정합니다.
한편 뒤바리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빼돌리기 위해 프랑스 전국구로 사기를 친 잔느는 목걸이는 물론, 남편과 함께 런던으로 도망칩니다.
잔느는 이 어마어마하지만 못생긴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갖게 되었지만 처음부터 착용할 생각도, 할 수 도 없었고 어느 런던의 보석상에 자신이 마구잡이로 분리시켜버린 다이아몬드 일부를 보여주며 흥정해 재물을 손에 쥐려 노력했죠. 베머는 자연스럽게 파산행
그렇게 이 다이아몬드 목걸이는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됩니다.
이 목걸이 사진 또한 현재 남아있는 목걸이가 아닌 그 당시 뒤바리 목걸이를 목격한 런던 보석상의 기억을 토대로 재현시켜 놓은 것이에요.
하지만 사기꾼도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잔느는 파리 의회에 끌려가 전 재산을 몰수당하고 불에 달궈진 인두에 낙인이 찍힌 채 살페르티에르 여자 감옥에 끌려가 종신형을 선고받습니다.
이 와중에 로앙은 잔느에게 사기당한 이유로 어느 정도의 벌금형을 물린 채 무죄를 선고받아요
하지만 정말 결백했던 마리 앙투아네트는 파리 의회가 아닌 다이아몬드 목걸이 스캔들에 열정적으로 성을 냈던 프랑스 국민들에게 유죄를 선고받는 셈이 되어가죠.
사치스럽고 사악한 왕비, 타락한 추기경, 사라진 공작부인··· 스캔들의 모든 등장인물, 요소들이 프랑스 국민들을 흥미롭게 하는데에 어느 것도 모자림이 없었으니
잔느처럼 종신형을 받고 감옥에 갇히거나
베머처럼 파산을 하거나
로앙처럼 용서를 빌어야 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뒤 바리 다이아몬드 목걸이로 인해 파리 사람들은 적국에서 온 사치스러운 왕비가 개인 자금을 위해 음모를 꾸민 것으로 생각했고, 마리 앙투아네트를 증오의 대상으로 삼게 됩니다
결국 목걸이 스캔들 이후 평판을 전혀 회복시키지 못한 마리 앙투아네트는 2년 후, 프랑스혁명이 발발하며 단두대에서 삶을 마감합니다
어느 현대 역사가는 이 사기 스캔들을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마리 앙투아네트가 전적으로 무죄라는 점은 명백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유죄를 믿고 싶어 했기 때문에 그녀를 유죄로 간주했다.
목걸이 스캔들 이후 마리 앙투아네트는 적자 마담이라는 악명을 얻으며 파리 사람들을 아유를, 귀족들은 냉정한 눈길을 보냈어요
더욱이나 스캔들의 최종 빌런 잔느는 (반) 앙투아네트 세력들에 의해 감옥에서 도망친 후 마리 앙투아네트가 동성애를 나눈다 주장하며 왕비의 평판을 매서울 정도로 깍아내리며 비방하는 데에 가장 앞서서 활동했다는 것...
마리 앙투아네트의 평판을 완벽하게 망가트리는 것에 성공한 잔느는 남편이 있던 런던으로 건너가 마리 앙투아네를 비방하는 책을 쓰면서 잘 사는 가 싶더니! 카르마는 있는 것인가요?
빚쟁이에게 쫓기면서 살던 잔느는 창문에서 떨어져 온몸이 찢긴 채 마리 앙투아네트보다 2년 앞서 사망하게 됩니다
이 포스팅은 안토니아 프레이저, 마리 앙투아네트 책을 참고 및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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