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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방당한 빈털털이 왕자가 차기 여왕과 결혼할 수 있었던 이유

Royals/UK

by lxiawr 2021. 4. 10. 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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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9일, 엘리자베스 2세의 부군 필립공이 99세의 나이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1921년생인 에든버러 공작은 이로써 역사상 통틀어 군주의 배우자로써 세 번째로 장수한 인물이 됐네요.

 

 

 

1921-2021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AKA. 퀸 마더는 무려 101세까지 살았지만 조지 6세는 군주로써 즉위하고는 단명했기 때문에 퀸 마더보다 필립공이 가장 오래 공무한 군주의 배우자(Longest-Serving British Consort)으로 인정받네요.

 

참고로 퀸마더는 1900년생으로 빅토리아 시대, 20세기, 21세기를 다 겪으신 분;;

 

 

 

작년 필립공 99세 생일 기념해 사진 공개했던 왕실 나이로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네요.

 

 

 

필립공은 엘리자베스 2세의 부군이기 이전에 쫓겨난 그리스 왕실의 왕손이기도 했습니다. 그리스와 덴마크의 왕자 안드레아스의 아들로 왕계 계승 서열 6위이라 왕위에서 멀긴 했지만 어찌 됐든 그리스와 덴마크의 필리포스 왕자(본명)이었는데..

 

 

짧게 이야기하면 필립이 태어나고 거의 바로 그리스 왕정이 쫓겨나는 바람에 급하게 도망쳐서 가족은 말 그대로 뿔뿔이 흩어져서 가난하게 살게 되죠. 필립공 말년에 인터뷰에서 밝히길 노숙자(Essentially Homeless)와 같은 삶을 살았다고..

 

 

 

작년 73년 결혼 기념일 기념해 공개한 사진

 

 

 

뭐, 딱히 필립공이 인성으로 좋은 사람은 아니라곤 생각하지만 메건은 2년도 못 채우고 탈주했는데, 필립공은 무려 70년이 넘도록 공무한건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전 필립공이 공무 은퇴한 지 꽤 된 줄 알았더니만 96세였던 2017년에 은퇴를 했더라고요? 

 

 

그럼 어떻게 추방당한 빈털터리 왕자가 훗날 영국의 여왕으로 즉위할 공주과 사랑에 빠져 결혼할 수 있었을까요?

 

이유를 알려드리죠

 

 

 

 

 

 

 

 

 

 

 

 

 

 

 

 

 

 

 

 

 

 

 

 

 

 

 

그렇다.

그는 ㅈㄴ 잘생겼던 것이었다

 

 

 

1939년, 처음만난 미래의 부부

 

 

 

1939년 당시 13살 나이의 엘리자베스 공주는 아버지인 조지 6세를 따라 간 브리타니아 해군 사관학교(Britannia Royal Naval College)에 자신을 에스코트하러 온 금발의 18살 필립을 보고 폴인럽 해버립니다. 필립은 그 당시 영국 해군에서 비행 생도(Flying Cadet)로 일하고 있었죠.

 

 

이때 사실 말이 에스코트지 놀이 상대로 온 필립공은 엘리자베스 공주와 마가렛 공주의 기차놀이에 질려버려 이렇게 말했다 합니다. "저기 테니스 코트 네트 뛰어넘어보자!(Let’s go and jump the nets on the tennis courts.)"

 

 

이렇게 적으니 뭔지 싶지만 아무튼 필립의 멋진 점프 실력에 다시 한번 반해버린 엘리자베스 공주는 그날 밤 가정교사한테 점프한 모습이 너무 멋졌다며 난리를...(당시 가정교사 Marion Crawford가 인증함)

 

 

엘리자베스 공주는 영화 스타처럼 잘생긴 필립에게 첫눈에 반했지만 그 당시에도 13살은 어렸고, 필립은 전쟁터에 나갔고, 둘은 전쟁 동안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관계를 서서히 성립해갑니다.

 

 


 

 

여왕이 결혼했을때 친구한테 보낸 필립공과의 첫만남에 대한 편지

 

 

내가 필립을 만난 건 전쟁 바로 직전 1939년 7월, 로열 해군 사관학교에서였음

전에 켄트 공작부인 결혼식에서 봤을 수도 있지만 기억 안 남

 

난 13살 그는 곧 떠나야 할 18살이었고 필립은 전쟁이 터지자 해군에 입대했지.

우린 그가 휴가일 때밖에 볼 수 없었어. 3년 동안 한 두 번인가??

 

 

"The first time I remember meeting Philip was at the Royal Naval College, Dartmouth, in July 1939, just before the war. (We may have met before at the coronation or the Duchess of Kent’s wedding, but I don’t remember).

 

I was 13 years of age and he was 18 and a cadet just due to leave. He joined the Navy at the outbreak of war, and I only saw him very occasionally when he was on leave - I suppose about twice in three years."

 


 

 

>> 인디펜던트 지는 둘의 첫 만남을 필립공의 친척인 Princess Marina의 결혼식 때라고 하는데 이때는 여왕이 8살 정도라서 기억에 아예 없었던 듯

 

 

 

 

 

 

 

 

18살의 공주

 

 

 

아무튼 시간이 흘러 1946년 필립은 전쟁이 끝나고 영국으로 복귀합니다.

 

이때 필립은 엘리자베스 공주에게 편지하길 "전쟁에 나가 승리하고, 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제 자신을 재정립할 수 있는 것. 완전하고 거리낌없이 사랑에 빠졌다는 건 모든 사람을 개인적으로 만들고, 나아가 세상의 어려움까지 작고 하찮은 것처럼 보이게합니다. (To have been spared in the war and seen victory, to have been given the chance to rest and to re-adjust myself, to have fallen in love completely and unreservedly, makes all one's personal and even the world's troubles seem small and petty)" 란 러브러브한 말을 보내기도 하고..

 

 

그해 6월 막 스무 살의 공주가 가장 좋아하는 성 앞 정원에서 프러포즈합니다. 그리고 그 즉시 공주는 청혼을 허락하나

 

영국 왕실의 반응은 뜨근미진했습니다. 아무리 그리스 왕실의 왕자라지만 이미 쿠데타로 쫓겨난 왕실이었고, 영국인도 아니고 독일계라는 이유였죠. 그리고 이전에 필립의 사실상 아버지 역할을 한 루이 마운튼배튼이 조지 6세에게 은근히 둘의 결혼을 밀어붙였지만 조지 6세는 공주가 너무 어리다고 거-절 한 바 있기도 합니다. 더욱이나 조지 6세는 프러포즈 사실을 공개하는 걸 꺼렸고요

 

 

 

 

 

 

이때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은 필립을 적국의 적인 것 마냥 결혼 반대했다고 하는데 필립의 누나들이 나치와 결혼한 것도 있지만 (결혼 후에는 진보적이라고 권위를 떨어트린다고 싫어함..처가살이;;)

 

 

 

 

 

 

얼굴은 유해보이다만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 자체가 굉장히 인종차별주의적인 사람이었고, 특히나 자기보다 '아래'라고 생각하는 계급의 사람들을 심하게 조롱했던 걸로 유명합니다. 물론 이건 생전에는 철저하게 영국 왕실에서 덮으려고 노력했는데 사망 후 다 밝혀졌죠. 가디언즈는 몰인정의 퀸(The Queen of Unkindness)이라고 까는 기사를 내보내기도 합니다. 관심있는 분들은 아래 기사로..

 

 

>> 엘리자베스 보우스라이언은 필립공이 신분이 낮다고 무시했다고 하는데 사실 필립공과 여왕은 모두 빅토리아 여왕의 현손자(great-great-grandchildren)입니다. 물론 먼 친척이긴 하죠. 한 팔촌(third cousins)정도??

 

 

 

엘리자베스 공주, 필립, 보우스라이언, 조지6세, 마가렛 공주

 

 

 

The queen of unkindness | Tanya Gold

Tanya Gold: When remembering the Queen Mother, let us not overlook her cruelty

www.theguardian.com

 

 

 

1946년, 루이 마운튼배튼 딸 Patricia Mountbatten의 신부들러리로 선 공주&필립

 

 

 

하지만 스무 살의 공주는 완고하게 결혼을 밀어붙이죠. 그렇게 1947년 7월 둘은 약혼을 공개적으로 발표하며 필립은 마운튼배튼이 되고, 그리스와 덴마크의 왕위 계승 권리를 포기합니다. 안 쫓겨났어도 왕도 못되는데 딱히 엄청나게 큰 희생은 아님

 

 

 

1947년 7월 10일, 약혼발표하는 공주&필립

 

 

 

 

 

 

 

 

 

 

 

마운튼배튼 백작의 지원을 받고는 있었으나 가난했던 필립은 모친 앨리스 공주의 티아라에서 다이아몬드를 떼어내 새로 디자인한 약혼반지로 프러포즈합니다. 결혼반지는 공주의 모친을 따라 웨일스 산 금으로 만들어진 것

 

 

 

 

 

 

 

1947년 11월 20일 Westminster Abbey에서 열린 결혼식

 

 

 

 

결혼식 후 버킹엄궁에서

 

 

 

 

 

 

 

 

 

 

 

 

 

 

 

 

 

 

 

 

 

 

 

이 날 저녁 만찬에서 아버지 조지 6세는 "언젠간 릴리벳은 여왕이 될 테고, 필립은 여왕의 남편이 되겠지. 군주의 배우자는 군주 그 자체보다 훨씬 어렵지만 그는 일을 아주 잘 해낼 거 같군(One day Lilibet will be queen and he will be consort. That’s much harder than being a king, but I think he’s the man for the job.)" 이라 말했다 하죠.

 

 

 

Longest-Serving British Consort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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