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Jewelry

브라질 황후🇧🇷 위해 만들어진 브라간사 티아라의 운명

lxiawr 2024. 2. 6.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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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간사 티아라

 

 

현대 유럽 왕실에 남아있는 주얼리들이 오랜 시간 한 곳에만 얌전히 머물러있었던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이 주얼리 같은 경우 흥미롭게 흘러갔더라고요.

 

 

주제 1세

 

 

브라간사 왕가가 군림하던 포르투갈🇵🇹은 유럽의 열강들에 밀려 후진국의 지위로 전락한 상태였습니다. 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 프랑스, 영국이 식민지의 노예 제도를 철폐한다 선언하였을 때 브라간사 왕가는 식민 체제를 유지하고 식민지 브라질🇵🇹과의 관계를 강화하고자 하였죠.

 

 

당시 비슷한 연배 영국의 조지 3세도 도나 마리아 1세 처럼 양극성 장애를 앓았다. 하지만 도나 마리아 1세는 조지 3세보다 예후가 좋지않았고, 여동생 2명도 비슷한 정신병을 앓은 걸 보면 브라간사 왕가 내력으로 보인다.

 

 

1777년 주제 1세마리아나 빅토리아 데 에스파냐 왕녀의 장녀로 포르투갈 왕위를 물려받은 도나 마리아 1세. 42세라는 늦은 나이에 마리아 1세가 여왕으로 즉위한 후 삼촌인 남편도 사망하고, 후계자도 사망하며 이미 불안하던 그의 정신상태는 악화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터진 프랑스혁명이라는 소식은 여왕을 더욱더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더욱이나 근친혼도 심했는데, 마리아 1세 같은 경우 법적인 문제 때문에 삼촌(아빠랑 2살 차이나는;)과 결혼했고, 그나마 건강하던 마리아 1세 여동생 베네디타 공주는 마리아 1세 아들이자 조카인 호세와 결혼했다. ~원형 집안~

 

 

브라간사 왕가의 정신병 내력? 현대에 와서 진단하면 양극성 장애라 판단할 수 있는 정신 이상 증사로 인해 1792년부터 국정 운영이 불가해진 마리아 1세를 대신해 돈 주앙이 섭정을 맡게 됩니다. 1807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전성기 프랑스 군이 스페인-포르투갈 국경을 넘어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으로 돌격해 보자 불안해진 돈 주앙은 브라간사 왕실 전체를 크고 부유한 식민지 브라질로 옮기기로 결정합니다.

 

 

돈 주앙

 

 

1814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패배하며 브라간사 왕실은 포르투갈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섭정 돈 주앙은 식민지 브라질에 머물겠다 결정하며 그다음 해 브라질을 포르투갈과 알가르베 연합 왕국의 지위로 격상시켰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리아 1세가 브라질에서 사망하며 포르투갈, 브라질, 알가르베 연합 왕국의 주앙 6세 국왕이 즉위합니다. 

 

 

리우데자네이루 풍경 그림(1817)

 

 

포르투갈에서는 계몽주의에 자극받은 자유주의 혁명이 발발하며 혁명주의자들은 주앙 6세가 본국으로 귀환하도록 요청했습니다. 왕위를 잃을까 두려웠던 주앙 6세는 포르투갈로 귀환을 결정하며 브라질에는 아들 페드루를 섭정 황태자로 남겼죠. 주앙 6세가 떠난 브라질에서는 독립의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었고, 이를 걱정한 포르투갈은 섭정 황태자 페드로의 본국 귀환을 요구했으나 페드로는 브라질에 남겠다 선언합니다.

 

 

페드로가 브라질 잔류를 선언한 1822년 1월 9일은 'Dia do Fico' 으로 기념된다.

 

 

1822년 9월 7일 포르투갈은 다시 한번 페드로의 리스본 귀환을 촉구하며 그의 선언은 무효라는 공문서를 보냈죠. 하지만 이피랑가 강변에서 이 소식을 받은 페드로는 "독립인가 죽음인가! Independência ou Morte!"를 외치며 정식으로 포르투갈로부터 브라질의 독립을 선언합니다. 12월 22세 섭정 황태자는 황제의 자리에 오르며 페드로 1세로 즉위합니다. 

 

 

페드로 1세와 결혼하기 전 마리아 레오폴디네는 19세로 당시로 보면 첫 결혼하기엔 늦은 나이였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부유하고 1살 연하의 포르투갈과 브라질 왕세자가 구혼했다. 너무나도 좋은 남편감이지만 프란츠 2세는 망설였는데..

 

 

브라질의 새롭게 군림하는 브라간사 왕가에서 페드로 1세 황후 마리아 레오폴디네는 신성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이자 오스트리아 제국 초대 황제 프란츠 2세의 딸로 예술과 과학을 후원하며 독립 후 브라질 국민들에게 큰 사랑과 영향을 미쳤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브라질 리오에 도착한 마리아 레오폴디네. 프란츠 2세가 마리아 레오폴디네와 페드로의 결혼을 망설인건..페드로는 폭력적인 성격, 사람과 동물들에 대한 가학적인 행동, 여성편력으로 유명했고, 합스부르크 왕가에 내려오는 간질을 앓았기 때문이다.

 

 

왕세자임에도 불구하고 페드로는 자기 통제를 전혀 하지 못했던 인간으로 보인다. 매우 변덕적, 충동적이라는 성격으로 알려진 페드로 1세는 마리아 레오폴디네에 비해 상당히 교육 수준이 떨어졌다.

 

 

궁전 안에만 살던 마리아 레오폴디네는 잘생긴 남편에 한눈에 반했지만, 페드로 1세는 아내를 이럴 꺼면 왜 결혼 경멸한다고 해도 될 정도로 무시하면서 결혼 전 만난 애인 Domitila를 공식 정부로 삼으며 사생아를 만들지 않나, Saint Isabelle 훈장을 주지 않나, 직위를 만들어 주지 않나.. 이러한 계속된 굴욕을 겪게 된 마리아 레오폴디네는 페드로 1세에게 최후통첩을 날리게 됩니다.

 

 

마리아 레오폴디네

 

 

"너 정부 정리해" 기어코 정부를 산투스 후작 직위까지 만들어준 남편을 버틸 수 없었던 마리아 레오폴디네는 페드로 1세가 정부와의 관계를 정리할 것을 요구했고, 그렇지 않으면 부친 프란츠 2세에게 돌아가길 원했습니다. 최후통첩으로 인해 이미 좋지 않았던 부부 사이는 최악으로 치닫았습니다.

 

 

마리아 레오폴디네

 

 

아내의 최후통첩에도 정신을 못 차린 페드로 1세는 마리아 레오폴디네에게 Domitila와 공식석상에 나타나도록 강요했지만 거부하자, 매우 변덕적이고 충동적인 성격이었던 페드로 1세는 그의 유명한 새디스틱적 행동으로 아내에게 폭력을 가했고, 그 결과 임신하고 있던 마리아 레오폴디네는 유산을 하고 맙니다. 유산 열흘 후 고열과 고통에 시달리던 마리아 레오폴디네는 여동생에게 '우리 같이 불쌍한 공주들은 불행 아니면 행운이라 던지는 주사위같아!' 라는 편지를 남기고 29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됩니다.

 

 

페드로 1세

 

 

마리아 레오폴디네의 공식적은 사망은 유산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인한 사망이었으나 브라질에서는 페드로 1세의 폭행으로 인한 사망으로 황후가 사망했다는 소문이 퍼졌습니다. 어찌 보면 물리적 폭행이 포함된 싸움 → 유산 → 사망이니 페드로 1세의 행동으로 인해 발생된 사망이라고 할 수 있겠죠.

 

 

정부 Domitila와 그의 가족은 황후의 죽음으로 상당한 비난을 받았다.

 

 

사랑받는 황후의 죽음으로 페드로 1세는 아내 생전 자신이 얼마나 무례하게 취급했는지 후회했다고는 하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사생아까지 10명이 넘는 자식을 두고 있던 페드로 1세는 또다시 결혼을 추진합니다. 하지만 유럽에는 페드로 1세와 정부와의 추잡한 관계가 널리 알려져 있었고, 사이코적인 성격에, 애 딸린 홀아비와 결혼하고 싶은 유럽 공주들은 없었죠.

 

 

아멜리아 드 로이히텐베르크 공녀

 

 

더욱이나 딸을 잃은 프란츠 2세는 손자에게 브라질 왕위를 보장하고자 했기 때문에 페드로 1세의 재혼을 막았습니다. 계속해서 청혼 거절을 당하자 페드로 1세는 눈을 낮추기 시작합니다. 그 중 막시말리안 1세 요세프의 손녀 아멜리아 드 로이히텐베르크 공녀는 젊고, 아름답고, 교육받은 여성 중 한 명이었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의붓아들 외젠 드 보아르네의 딸이라는 것

 

 

아멜리아 드 로이히텐베르크 공녀

 

 

외젠 드 보아르네의 딸이라는 '결점'이 있었어도 17살 아멜리아 드 로이히텐베르크 공녀는 상당히 좋은 신붓감이었고, 그의 아름다움에 반한 30살 페드로 1세는 로이히텐베르크 공작부인 주도하에 소수의 사람만 참석한 결혼식을 올리죠. 약혼하면서 페드로 1세는 정부와의 관계도 완전히 끊었다고 하는데 믿기 힘듦

 

 

1829년 결혼식

 

 

페드로 1세의 두 번째 결혼은 첫 번째 결혼에 비해 행복한 결혼이었습니다. 페드로 1세는 왕관에 가까운 다이아몬드 디아뎀을 결혼 기념 선물하며 어린 아내에게 사랑과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페드로 1세의 결혼 선물인 브라간사 티아라를 포함해 목걸이, 귀걸이, 브로치 주얼리 세트는 프랑스에서 제작됐지만 브라질에서 온 다이아몬드로 만들어져 새로 브라질 황후가 될 아멜리아 드 로이히텐베르크 공녀에게 특별한 의미를 주었죠. 그 보석들이 남편의 첫 번째 아내의 것이었더라도요.

 

 

아멜리아를 위한 다이아몬드 티아라는 페드로 1세가 자식들이 갖고 있던 마리아 레오폴디네의 보석들을 구매해 만들었다.

 

 

 

 

 

 

아멜리아 드 로이히텐베르크 공녀는 사생아를 제외하고 의붓자식들에게 친절했으며 브라질 궁정에서 인기를 얻었으나 이러한 인기가 브라질의 국내외 불안정한 경제, 정치적 위기를 해결할 순 없었죠. 결국 1831년 페드로 1세는 어린 아들을 위해 왕위를 포기하고 퇴위를 결정합니다. 

 

 

아멜리아와 딸 마리아

 

 

페드로 1세가 퇴위함에 따라 페드로 1세와 아멜리아 황후는 브라질을 떠나 프랑스 파리로, 리스본으로 이주합니다. 1834년 페드로 1세 사망하며 둘의 유일한 자식이었던 마리아도 21세의 젊은 나이에 성홍열에 걸리며 사망합니다.

 

 

조세피나 왕비

 

 

스웨덴 구스타프 5세 왕비 바덴의 빅토리아

 

 

재혼하지 않은 채 1874년 사망한 아멜리아에게는 주얼리를 물려줄 딸이 남아있지 않았으니 살아있는 가장 가까운 가족인 언니, 스웨덴과 노르웨이의 조세피나 왕비에게 브라간사 티아라, 귀걸이, 목걸이, 브로치를 남기죠.

 

 

구스타프 6세 아돌프 왕비 루이즈 마운트배튼

 

 

아멜리아 황후의 손을 떠나 스웨덴으로 가게 된 브라간사 티아라는 현재까지 스웨덴 왕실에 내려오고 있습니다. 앞서 브라간사 티아라가 흥미롭다고 말했었죠? 브라질 황후를 위해 만들어진 브라간사 티아라는 스웨덴으로 전해져 스웨덴 왕비가 된 브라질인이 쓰고 있다는 점!

 

 

 

 

독일인, 브라질인 부모 사이에서 독일에서 태어나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자란 실비아 조멀라트 Silvia Sommerlath는 왕족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에 당시 스웨덴 왕세자 칼 구스타프가 실비아 조멀라트와 결혼한다면 왕족 지위와 왕위 계승권 모두 포기하지 않는 한, 평민과 결혼은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그럼 내가 왕 될 때까지 기다리지 뭐! 원래대로라면 구스타프 6세 아돌프의 뒤는 장남 구스타프 아돌프 왕세자가 이어받고, 칼 16세 구스타프 순서였어야 하나, 구스타프 아돌프 왕세자는 칼 구스타프가 고작 9개월일 때 비행기사고로 일찍이 사망해 27세 젊은 나이의 스웨덴 왕으로 즉위합니다. 왕으로 즉위한 3년 후 1976년 결혼에 대해 그 누구의 승인도 필요하지 않게 된 칼 16세 구스타프는 실비아 조멀라트와 결혼하며 브라질인 왕비를 맞게 되죠.

 

 

 

 

 

 

브라간사 티아라는 다른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시대 만들어진 주얼리 세트들보다 훨씬 높은 가치로 평가됩니다. 물처럼 투명한 다이아몬드가 아름다운 브라간사 티아라는 3kg가 넘는 무게에 착용하기도 매우 어렵지만 스웨덴 왕비로서 실비아 조멀라이트는 아주 특별한 이벤트에서는 꼭 브라간사 티아라를 착용합니다.

 

 

 

 

 

 

 

 

 

 

빅토리아 왕세녀 결혼식에서 마들렌 공주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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