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3세의 새로운 로열 사이퍼가 공개됐습니다.
찰스의 C와 라틴어로 왕을 뜻하는 R로 구성돼 숫자 3이 중앙에 위치한 찰스 3세의 모노그램은 이제 엘리자베스 2세의 로열 사이퍼를 대신하게 됩니다. 찰스 3세의 새로운 로열 사이퍼는 영국 군주를 의미해 영국의 정부 건물, 우편함, 여권에 새겨지게 되죠.
찰스 3세는 엘리자베스 2세의 폰트보다 조지 6세와 비슷하게 더 얇고 섬세한 폰트를 선택했네요. 자세히 보면 찰스 3세의 로열 사이퍼와 엘리자베스 2세의 로열 사이퍼에는 두드러진 차이점이 있는데요.
엘리자베스 2세의 로열 사이퍼에는 17세기 찰스 2세를 위해 만들어진 에드워드 참회왕의 관 St Edward's Crown이 그려져 있는 반면 찰스 3세의 로열 사이퍼에는 찰스 1세가 참수당하며 1649년 군주제가 폐지당할 때 사라져 버린 튜더 왕관과 상당히 흡사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1953년 엘리자베스 2세가 즉위하면서 캔터베리 대주교는 에드워드 참회왕의 관을 새로운 여왕의 머리에 씌어줬습니다. 30cm 높이의 견고한 금으로 만들어진 왕관은 루비, 사파이어, 자수정, 사파이어, 가넷 등 444개의 보석으로 장식되어 대략 2kg가 넘는 상당한 무게이기 때문에 대관식에서 짧게 쓰인 후에 Imperial State Crown으로 바꿔 착용합니다.
에드워드 참회왕의 관은 1661년 잉글랜드 왕국 웨식스 왕조의 왕 에드워드 참회왕의 왕관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에드워드 참회왕은 1161년 교황 알렉산데르 3세로부터 시성을 받으며 그의 왕관은 성스러운 유물이 돼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보관되었습니다. 이때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수도승들은 에드워드 참회왕이 꼭 그의 왕관이 다음 4세기 동안 모든 군주들의 대관식에서 착용했으면 좋겠다 부탁했다고 전했죠.
수도승들의 말은 거짓말이었습니다. 수도승들의 주장은 순례자들이나 후원자들을 교회로 끌어들이기 위한 관광업 마케팅이었을 뿐이죠. 그리고 그들은 성공했습니다. 수도승들의 거짓말로 시작되긴 했으나 1220년부터 1626년까지 에드워드 참회왕의 관은 모든 영국 군주의 대관식에서 착용됐죠.
이때 유일하게 왕비의 머리 위에 쓰이기도 하는데요. 1533년 헨리 8세는 첫 번째 아내 아라곤의 캐서린과 무리한 결혼 무효를 하기 위해 종교개혁까지 하면서 결혼한 앤 불린을 합법적인 왕비로 보이기 위해 새로운 아내에게 에드워드 참회왕의 관을 착용하게 합니다.
이때 이미 임신한 상태였던 앤 불린이 자신에게 남자 후계자를 낳아줄 것이라며 기대한 헨리 8세였지만 아이는 그가 그렇게 오랫동안 기다려온 남자 후계자가 아니라 엘리자베스 1세였죠.
1649년 찰스 1세가 폐위당하고 처형당했을 때 새로운 공화국은 군주제의 과시적인 왕관은 필요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때 에드워드 참회왕, 튜더 왕관이나 왕권의 상징물들은 거의 모두 팔아버리죠. 그러나 군주제가 복위되고 새로운 왕관이 만들어졌습니다. 에드워드 참회왕의 관의 카피템이었죠.
중세시대에 만들어진 오리지널 에드워드 참회왕의 관에 영감을 만들어진 새로운 에드워드 참회왕의 관은 1611년 찰스 2세의 대관식에 사용됩니다. 이때도 또 새로이 만들어진 에드워드 참회왕의 관은 위기를 맞는데요. 1671년 Thomas Blood이라는 아일랜드 장교가 왕관을 망치로 두들겨 펴서 옷 속에 숨겨 훔치려는 시도였죠.
그의 도둑질은 거의 성공하나 막판에 잡힙니다. 그러나 관대함을 보여주려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찰스 2세는 왕관 도둑에게 벌을 내리지 않고 사면하는 것으로 끝냈어요. 절도 사건로 망가진 왕관은 다시 고쳐지며 이후에도 여러 차례 변화를 겪게 됩니다. 400년 넘게 영국 군주의 대관식에서 써졌던 에드워드 참회왕의 관은 윌리엄 3세를 마지막으로 군주의 머리 위에는 오르지 못하게 됩니다. 다만 1702년 앤 여왕과 1902년 에드워드 7세까지 그들의 대관식에서 모습을 보이긴 했어요.
200년 만에 에드워드 7세는 몇 세기의 전통을 다시 살리기로 결정합니다. 하지만 대관식을 며칠 앞둔 에드워드 7세는 갑작스럽게 병을 앓기 시작했죠. 버킹엄 궁에서 수술까지 받으며 대관식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던 에드워드 7세가 2kg가 넘는 금으로 만들어진 왕관은 쓰기엔 너무나도 무거웠기 때문에 에드워드 7세는 에드워드 참회왕의 관 대신 더 가벼운 제국관을 썼습니다.
전통을 살리고 싶었던 에드워드 7세 이후로 조지 5세, 조지 6세.. 엘리자베스 2세까지 대관식에서 에드워드 참회왕의 관을 쓰는 전통을 다시 구현해가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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