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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왕실을 대표하는 보석 컬렉션

Culture/Jewelry

by lxiawr 2023. 1. 31.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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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궁전

 

 

누구도 부정하지 못하는 스페인 왕실을 대표하는 보석 컬렉션이 있습니다. 스페인 왕실에서 부터 전해지는 보석 컬렉션  Joyas de Pasar이라 불립니다. 그럼 이 보석 컬렉션을 만든 인물 먼저 알아볼까요?

 

 

베아트리스 공주의 빅토리아 유제니 공주의 출산은 굉장히 힘들었다고, 빅토리아 여왕 골든 쥬빌리 1887년에 태어난 공주이기 때문에 빅토리아 여왕은 '작은 주빌리 아기'라 불렀다. 또한 찰스 1세 이후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첫 번째 영국 왕실 멤버이기도 하다.

 

 

빅토리아 여왕의 막내딸 베아트리스 공주바텐베르크의 헨리의 외동딸 바텐베르크의 빅토리아 유제니1887년 10월 24일 스코틀랜드 발모랄 성에서 태어났습니다.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과, 스페인 귀족 출신으로 나폴레옹 3세의 아내, 프랑스 황후가 된 대모 외제니 드 몽티조의 이름을 딴 빅토리아 유제니 공주는 풀네임보다는 가족들과 대중들에게는 에나 Ena라는 이름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베아트리스 공주가 헨리와 결혼하며 멀어지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결혼 후에 빅토리아 여왕 곁에 살겠다고 약속해 버킹엄 궁, 윈저 성 등등 이리저리 여왕 옆에서 살았다. 하지만 결혼 10년이 조금 지났을 때 헨리는 말라리아로 사망했다. 이에 빅토리아 여왕은 베아트리스 공주에게 켄징턴 궁 아파트를 줬고 이 곳에서 영구적으로 살았다.

 

 

R.T. Pritchett가 그린 빅토리아 유제니 공주의 세례식 모습

 

 

젊은 빅토리아 유제니

 

 

1905년 18살 바텐베르크의 빅토리아 유제니19살 스페인 국왕과 만나게 됩니다. 버킹엄 궁 국빈 만찬에서 알폰소 13세는 처음 만난 빅토리아 유제니 공주와 자연스럽게 사랑에 빠졌죠. 영국, 스페인 왕족의 만남은 완벽하게 순조로울 듯싶었지만 알폰소 13세의 모친, 오스트리아의 마리아 크리스티나의 생각은 달랐습니다.

 

 

알폰소 13세 빅토리아 유제니 공주

 

 

빅토리아 여왕이 결혼을 통해 유럽 곳곳에 퍼트린 혈우병 유전자는 왕실 혈통을 이어가는 데 확실히 문제였죠. 특히나 빅토리아 여왕의 8번째 자식인 레오폴드 왕자는 이미 혈우병을 앓다 사고로 사망했고, 에나 공주의 남동생 레오폴드도 혈우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빅토리아 유제니 공주와 결혼한다면 혈우병 유전될 가능성이 매우 높았지만 그 당시 의학 발전의 한계로 빅토리아 여왕 부터 전해진 혈우병은 거의 잘 알려지지 않았고, 혈우병 자체도 거의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알폰소 13세는 혈우병 유전자에 대해선 걱정하지 않았죠.

 

 

알폰소 13세 빅토리아 유제니 공주

 

 

혈우병보다 걱정이었던 것은 종교. 미래의 스페인 왕비를 결정할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성공회 신자 빅토리아 유제니 공주에 대해서 회의적이었습니다. 더욱이나 영국 반응도 가톨릭 신자와 결혼한다고? 라며 심지어 런던의 주교는 베아트리스 공주에게 직접 "제발 가톨릭 신자와 결혼은 안돼ㅜㅜ" 라며 결혼을 재고해 달라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랑에 빠진 10대 후반 알폰소 13세와 빅토리아 유제니 공주에게 이런 반응들은 의미 없었죠. 따라 빅토리아 유제니 공주는 성공회를 버리고 가톨릭으로 개종하며 1701년 왕위계승법에 따라 영국 왕위 계승권을 박탈당합니다. 

 

 

결혼 소식! 2013년까지 영국 왕실은 가톨릭 신자와 결혼하면 영국 왕위 계승권을 박탈했다. 이 법은 남자 장자 상속 제도와 함께 폐지됐다.

 

 

또 다른 문제, 빅토리아 여왕의 손녀인 빅토리아 유제니 공주는 분명히 왕족 출신입니다. 다만 빅토리아 유제니 공주의 부친 바텐베르크의 헨리의 부모는 귀천상혼해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에 합스부르크 가문 출신 며느리를 원했던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빅토리아 유제니의 바텐베르크 혈통이 왕족답지 않다고 여겼죠. 그러나 이때 삼촌 에드워드 7세가 나섭니다.

 

귀천상혼까지는 아니지만 레벨이 맞지 않은 결혼이라 투덜대는 것을 막기 위해 에드워드 7세는 빅토리아 유제니 공주에게 Her Highness 보다 한층 더 격상된 Her Royal Highness 칭호를 주었습니다. 여전히 마리아 크리스티나는 결혼에 못마땅했고, 스페인 국민들도 외국인 왕비를 딱히 좋게 받아들이지 않았지만요. 

 

 

알폰소 13세 빅토리아 유제니 결혼 그림..왜인지 중심에는 시어머니 마리아 크리스티나가..

 

 

여러 문제를 거친 알폰소 13세와 빅토리아 유제니 공주는 1906년 5월 31일 많은 왕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제로니모 수도원에서 결혼식을 올립니다. 결혼 생활에 대한 암시일까요?

 

 

빅토리아 유제니 웨딩 드레스

 

 

빅토리아 유제니 = 에나

 

 

결혼식을 마친 후 마드리드 거리를 지나가던 알폰소 13세와 스페인의 새로운 왕비가 된 빅토리아 유제니를 향해 한 무정부주의자가 던진 폭탄에 거의 암살당할 뻔하죠. 결혼식을 막 마친 부부는 무사했지만 경비원, 구경꾼들.. 15명 이상 사망하며 왕비의 웨딩드레스는 피에 흠뻑 묻었다고 전해집니다. 

 

 

결혼식 후

 

 

결혼식 후 벌어진 암살 사건으로 15명이 사망하며 범인은 체포된 후 자살했다.

 

 

암살 사건으로 시작된 결혼 생활은 처음부터 삐그덕 거리기 시작합니다. 영국에서 스페인으로 온 수줍은 외국인 왕비는 영국에서는 배신자라며, 스페인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며 서서히 고립됐고, 알폰소 13세가 계속해서 저지르는 혼외정사는 비밀도 아니었습니다. 아니.. 이미 알폰소 13세는 결혼 전에 낳은 사생아 자식들만 6명이 있었죠.

 

 

Philip de Lászlo가 그린 스페인 국왕 부부 공식 초상화

 

 

정반대 성격의 사람들이 만난 결혼은 1907년 장남 알폰소가 태어나며 관계가 개선됐지만 후계자 알폰소가 혈우병을 앓고 있다는 게 밝혀지자 관계는 다시 분열되기 시작합니다. 사전에 위험을 알고 있었던 알폰소 13세는 본인이 그 사실을 무시하고 에나 왕비와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빅토리아 유제니 왕비를 비난하기 시작했죠. 알폰소 13세의 이러한 비난에 알폰소 13세와 빅토리아 유제니 왕비의 결혼 생활은 혈우병처럼 치유할 수 없는 불화가 시작됐습니다. 

 

 

1908년 장남 알폰소와 스페인 국왕 부부..둘의 사이는 결혼 초 부터 분열됐다. 수많은 불륜을 저지른 알폰소 13세는 놀랍게도 에나 왕비 또한 불륜을 저질러 결혼 생활이 깨졌다 비난했다.

 

 

알폰소 13세와 에나 왕비는 7명의 자식들을 낳았습니다. 네 번째 아이는 사산했지만 그나마 혈우병 유전자는 장남과 막내아들에게만 전해졌죠. 물론, 알폰소 13세는 수많은 불륜으로 많은 사생아들을 두었지만요. 

 

 

이 포스팅에서 중요한 인물들이 아니니 빨리 지나가겠다... 장남 인판테 알폰소(왼쪽)는 1933년 평민과 결혼하기 위해 왕위 계승권을 포기하고 Corvodonga 백작이라는 직위를 받아드렸다. 그러나 어이없게 결혼은 금방 끝났고, 곧바로한 재혼도 곧바로 끝났다. 에나 왕비에게서 혈우병 유전자를 이어받은 알폰소는 1939년 플로리다에서 차사고로 사망했다. .................인판테 하이메(오른쪽)는 알폰소 13세가 사망하고 본인 스스로 보르봉 왕가의 수장으로 선언하고 앙주 공작 칭호를 받았다. 1949년 스페인 왕위를 포기하고 마드리드 공작 타이틀을 받아드렸다. 일부 스페인인들은 그를 하이메 4세라 인정하기도 한다. 후에 조카 후안 카를로스에게 스페인 왕위 권리를 포기했다. 

 

 

인판타 베아트리스(왼쪽) 인판타 마리아 크리스티나(오른쪽)

 

 

인판테 후안, 바르셀로나 백작(왼쪽) 안판테 곤잘로(오른쪽)은 누나 인판타 베아트리스가 운전한 차 사고 휴우증을 앓다 혈우병으로 오스트리아에서 사망했다

 

 

1931년 알폰소 13세는 내전을 피하기 위해 스페인을 떠나기로 결정합니다. 1931년 4월 14일 스페인은 제2공화국이 선포됐고 알폰소 13세와 에나 왕비, 그의 자식들은 몇 시간 만에 짐을 싸고 마드리드 궁전을 떠났죠. 스페인을 떠난 스페인 국왕 부부는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를 떠돌며 망명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1931년 알폰소 13세 빅토리아 유제니 왕비

 

 

이미 오래전부터 깨진 결혼생활을 이어가던 알폰소 13세와 에나 왕비는 각자의 삶을 살기로 결정했습니다. 공식적인 이혼은 하지 않았지만 알폰소 13세는 이미 합법적인 결혼을 통해 낳은 자식보다 사생아 자식들이 더 많다는 루머가 있을 정도였고, 놀랍게도 알폰소 13세는 결혼 생활의 분열은 아내의 불륜 때문이었다는 비난을 하기도 합니다.

 

 

1920년대 에나 왕비

 

 

알폰소 13세는 이탈리아 로마에 정착했고, 에나 왕비는 모친 베아트리스 공주가 사는 켄징턴 궁 근처에 있는 34 Porchester Terrace에 살기 시작했습니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며 영국을 떠날 것을 권고받은 에나 왕비는 런던을 떠나 다시 남편이 있는 이탈리아 로마로 돌아갔어요.

 

얼마 지나지 않아 알폰소 13세는 협심증을 진단받으며 후계를 걱정한 그는 세 번째 아들 인판테 후안에게 왕위 계승 권리권을 양도합니다. 권리 양도 후 한 달도 지나지 않은 1941년 2월 28일 에나 왕비와 가족들에게 둘러싸여 심장마비로 사망했죠. 

 

 

에나 왕비 알폰소 13세 자식들

 

 

알폰소 13세가 사망한 후에도 이탈리아 로마에 머물던 에나 왕비는 1년도 안 돼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정부가 그를 간첩혐의로 고발하면서 이탈리아에서 떠나라는 명령을 받아 이탈리아를 떠나 스위스 로잔에 정착했습니다. 실제로 에나 왕비는 연합국을 대표해 스파이 행위에 적극적으로 관여했다는 암시도 있었고요. 

 

 

빅토리아 유제니 왕비와 그레이스 켈리. 빅토리아 유제니 왕비는 알베르 2세의 대모이기도 하다.

 

 

에나 왕비의 말년의 대부분의 시간은 가족들과, 특히나 손자들과 함께 보낸 것으로 알려집니다. 또한 사교계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섰죠. 특히나 할리우드 배우 출신으로 모나코 레니에 3세와 결혼하며 유럽 사교계에서 배척받았던 그레이스 켈리를 유럽 사교계 적응하는데 도와주며 굉장히 친밀한 사이로 발전했어요.

 

 

스페인에서 펠리페 6세 세례식 참석한 에나 왕비

 

 

1968년 2월 에나 왕비는 증손자 펠리페 6세의 세계식을 위해 망명 이후 처음으로 스페인으로 돌아갑니다. 환영받지 못하던 외국인 왕비였던 빅토리아 유제니를 보기 위해 많은 스페인 사람들이 몰려들었지만 이 날이 에나 왕비의 마지막 스페인 방문이자 마지막 공식석상이 돼버렸습니다.

 

 

펠리페 6세 세례식 에나 왕비

 

 

펠리페 6세의 세례식이 끝나고 에나 왕비와 프랑코 장군은 군주제의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고 전해집니다. 여러 버전의 이야기들이 존재하지만 분명한 것은 에나 왕비는 아들 후안에게 스페인의 미래를 맡기는 것이 아닌 손자 후안 카를로스에게 맡기는 것이 좋을 것이라 강조했다고 해요. 짧은 스페인의 방문을 마치고 스위스로 돌아간 에나 왕비는 급격하게 건강이 악화되며 혼수상태로 빠졌고 1969년 4월 15일 81세의 나이로 사망합니다. 

 

 

빅토리아 유제니는 스페인을 떠나야한 날과 딱 38년 차이나는 날 사망했다.

 

 

1969년 사망한 빅토리아 유제니는 이미 6년 전 자신의 유언장을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 에나 왕비는 자신의 보석 컬렉션들이 군주에서 군주에게만 전해지도록 지정하는 Joyas de pasar 컬렉션이라는 유언보충서(Codivil)를 포함한 점이죠.

 

 

1920년대 빅토리아 유제니 초상화

 

 

에나 왕비의 Joyas de pasar은 할머니 빅토리아 여왕이 만든 Heirlooms of the Crown 전례를 따라한 것인데요, 즉 Joyas de pasar에 포함된 보석들은 스페인 군주나 왕비만이 사용할 수 있도록 제한을 둔 것이죠. Joyas de pasar 컬렉션은 티아라, 목걸이, 귀걸이, 팔찌, 브로치.. 총 8개의 보석뿐입니다. 

 

 

 

 

 

1. 세 개의 Fleur-de-Lis로 디자인된 다이아몬드 왕관

 

빅토리아 유제니 왕비

 

 

'The Good One'으로 불릴 정도로 스페인 왕실을 대표하는 다이아몬드 왕관

 

 

 

 

바르셀로나 백작 부부 착용한 왕관

 

 

소피아 왕비

 

 

 

 

레티시아 왕비

 

 

 

 

 

 

 

 

 

 

 

 

2. 다이아몬드 목걸이

 

 

 

빅토리아 유제니 왕비가 알폰소 13세에게 결혼선물로 받은 다이아몬드로만 만들어진 목걸이는 현재 스페인 왕실에 남아있는 다이아몬드 목걸이 보다 훨씬 긴 목걸이였습니다. 하지만 빅토리아 유제니 왕비는 목걸이를 2개로 나눠 하나는 Joyas de Pasar 컬렉션에, 짧은 나머지 하나는 전며느리에게 주었죠. 후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목걸이를 나눈 것은 빅토리아 유제니의 결정이 아닌 스페인 쪽에서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어요.

 

 

긴 버전!

 

 

짧은 버전!

 

 

 

 

 

 

3. 37개의 진주로 만들어진 목걸이

 

레티시아가 에나 왕비의 진주 목걸이를 착용한 적은 지금까지 단 한번!

 

 

 

 

 

 

 

 

4. '라 페레그리나'라고 불리는 배 모양의 진주를 매달아 놓은 다이아몬드 브로치

 

소피아는 진주 목걸이에 에나 왕비의 진주가 달린 다이아몬드 브로치를 달았다

 

 

 

 

역시나 알폰소 13세에게 결혼선물로 받은 보석 중 하나인 La Peregrina 진주가 박힌 다이아몬드 브로치, 에나 왕비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진주인 라 페레그리나 진주를 선물 받아 아주 기뻐했다고 해요. 하지만 에나 왕비의 진주는 진짜 라 페레그리나가 아닙니다.

 

진짜  페레그리나는 이미 나폴레옹 3세가 스페인 왕실에게서 훔쳐 팔아버린 지 오래였죠. 스페인 왕실은 후에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진주를 경매에서 사가자 "그건 진짜가 아냐 우리가 진짜야"라고 주장했지만.. 워낙 오랫동안  페레그리나 진주라고 우겨왔기 때문에 현재 스페인 왕실이 소유하고 있는 Joyas de pasar의 진주라 페레그리나 2세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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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커다란 다이아몬드 귀걸이 한쌍

 

레티시아 왕비가 자주 착용하는 귀걸이

 

 

 

 

 

 

 

 

 

 

 

 

 

 

6. 다이아몬드 팔찌 2개

 

역동적인 디자인의 똑같은 팔찌 2개

 

 

 

 

 

 

 

 

2020년 공개된 레티시아의 공식 초상화 속 왕비는 에나 왕비 컬렉션의 티아라, 팔찌, 귀걸이를 착용하고 있다.

 

 

 

 

 

 

 

7. 4줄 진주 목걸이

 

 

 

빅토리아 유제니가 Joyas de pasar 컬렉션으로 남긴 진주 4줄 목걸이는 아쉽게도 1969년 이후 대중 앞에 보인적이 없어요.

 

 

 

 

 

 

8. 다이아몬드로 둘러싸여 있고 커다란 옅은 회색 진주가 있는 브로치

 

 

 

 

 

 

 

당시 이러한 에나 왕비의 결정은 어이없을 정도로 특이한 결정이었습니다. 이미 남편 알폰소 13세가 쿠데타로 폐위되고 본인은 스위스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는데 군주에서 군주에게만 보석이 전해져야 한다고 지정하는 건 스페인 군주제가 반드시 다시 복원될 것이라는 굳은 믿음이 있어서였을까요?

 

 

빅토리아 유제니, 2개로 나누기 전 유언으로 남긴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다.

 

 

이러한 유언은 프란시스코 프랑코 장군이 스페인 군주제를 복원할 것이라고 말한 것을 굳게 믿었거나, 아니면 가문의 가장 중요한 보석들이 흩어지지 않고 가문의 가주가 소유하면 좋겠다는 바람이었을 뿐인지는 모릅니다.

 

 

 

 

에나 왕비 사후 Joyas de pasar 컬렉션은 형들이 모두 귀천상혼하며 스페인 왕위 계승권을 모두 포기해버렸기 때문에 본인만이 스페인 왕실 후계자라 열렬히 주장하고 있던 바르셀로나 백작, 인판테 후안에게 상속됩니다. 하지만 에나 왕비는 Joyas de pasar 컬렉션에 한 가지 더 덧붙였죠. "가능하다면, 내 아들 돈 후안이 물려받고, 손자 돈 후안 카를로스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바르셀로나 백작 부인이 착용한 에나 왕비의 티아라, 목걸이

 

 

바르셀로나 백작의 아내 메르세데스는 에나 왕비 사후 Joyas de pasar 컬렉션을 독점적으로 착용하기 시작합니다. 에나 왕비의 유언을 상속받은 바르셀로나 백작이지만 스페인 왕위는 그에게 넘어가지 않았죠. 1939년부터 1975년까지 스페인 국가 원수였던 프랑코 장군은 주제 복원을 선택하며 여러 이유로 바르셀로나 백작을 건너뛰고 그의 아들 후안 카를로스를 스페인의 왕으로 선포했습니다. 

 

 

후안 카를로스(왼쪽) 빅토리아 유제니(중간) 돈 후안(오른쪽)

 

 

소피아 후안 카를로스 빅토리아 유제니 바르셀로나 백작 부부

 

 

아들이 왕위에 올랐지만 프랑코 장군의 결정에 불만을 품은 바르셀로나 백작은 공식적으로 그의 왕위에 대한 권리를 1977년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따라 이미 바르셀로나 백작이 상속받은 Joyas de pasar 컬렉션은 백작 부인만이 착용할 수 있었죠.

 

 

바르셀로나 백작 부인이 쓴 Joyas de pasar 컬렉션의 티아라

 

 

하지만 결국 바르셀로나 백작이 왕위를 포기하며 Joyas de pasar 컬렉션은 후안 카를로스의 아내 소피아 왕비에게 전해져 현재는 스페인 (현) 왕비인 레테시아 왕비만이 독점적으로 착용할 수 있게됐습니다. 훗날 만약 펠리페 6세와 레티시아의 첫 번째 딸, 아스투리아스 여공, 레오노르가 스페인 여왕 자리에 오르게 된다면 Joyas de pasar 컬렉션을 소유하는 최초의 스페인 여왕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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